‘비긴 어게인’은 음악을 통해 삶의 균열을 복구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로, 실패와 상처를 겪은 두 인물이 뉴욕이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서로를 발견하고 자신을 회복해 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주류 음악 산업의 공식을 벗어난 이들의 여정은 독립적인 창작의 가치와 자존감을 중심에 두며, 관객에게 진정성 있는 울림을 전한다. 음악, 공간, 사람 간의 관계가 유기적으로 얽힌 이 작품은 감정 과잉 없이 따뜻한 위로를 전하며, 현실 속 다시 시작의 용기를 보여준다.
줄거리
영화는 영국 출신 싱어송라이터 그레타가 남자친구 데이브와 함께 뉴욕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데이브는 유명 음반사와 계약하며 솔로로 성공가도를 달리지만, 그 과정에서 그레타를 배제하고 결국 배신한다. 실연과 함께 음악에서도 길을 잃은 그레타는 한 바에서 우연히 자신만의 곡을 부르게 되고, 그 모습을 본 퇴물 음반 프로듀서 댄은 그녀의 음악에서 잊고 있던 진심과 가능성을 발견한다. 한때 유능했지만 지금은 업계에서 밀려난 댄 또한 가족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상태에서 방황 중이다. 두 사람은 정식 스튜디오나 자본 없이 뉴욕 곳곳의 거리, 골목, 지하철, 공원 등을 배경으로 앨범을 녹음하기로 한다. 소음이 가득한 도시의 일상이 그들의 배경이자 악기가 되고, 함께 작업하며 서로에 대한 존중과 신뢰를 쌓아간다. 그레타는 점차 음악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고, 댄은 음악이 가진 본질적 가치를 다시 깨닫는다. 영화는 이들의 과정을 통해, 음악이 단순한 상품이 아닌 진짜 삶의 일부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마지막에 그레타는 대형 기획사의 제안을 거절하고, 자신의 앨범을 온라인에 무료 배포하는 길을 선택한다. 상업적 성공보다 중요한 것이 자기 목소리를 지키는 일임을 말하며, 영화는 조용하지만 분명한 울림을 남긴다.
거리
'비긴 어게인'에서 앨범 제작은 단순한 음악 작업이 아니라, 두 주인공이 자신을 회복하고 재정의하는 과정으로서 기능한다. 댄은 주류 업계에서 밀려난 뒤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조차 잊은 인물이었지만, 그레타의 진심 어린 음악을 들으며 오래된 감각을 되찾는다. 반면 그레타는 오랜 연인에게 종속된 존재에서 벗어나 스스로 음악을 선택하고, 표현하고, 완성하는 독립적인 아티스트로 성장한다. 뉴욕이라는 도시의 거리에서 녹음하는 설정은 단순한 연출 기법을 넘어, 삶의 현장 속에서 예술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강한 메시지를 담는다. 도시의 소리와 풍경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음악의 일부로 작용하며, 이는 기존 음반 산업이 중시하는 ‘완벽한 사운드’ 대신 ‘진짜 감성’을 전면에 내세운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남녀 주인공이 로맨스를 이루지 않으면서도 서로에게 깊은 영향을 주는 방식에 있다. 그들은 서로를 구원하거나 의존하지 않고, 함께 동행하며 각자의 치유를 이뤄낸다. 조연들 또한 기능적인 장치를 넘어서 캐릭터로서 살아 있고, 특히 댄의 딸 바이올렛과 그레타의 친구 스티브는 관계의 진정성을 보여준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레타가 음악을 무료로 배포하겠다는 결정을 내리는 순간, 영화는 뚜렷한 메시지를 던진다. 자기 목소리를 찾는 여정은 외부의 평가가 아니라, 내면의 선택에서 비롯된다는 것. 《비긴 어게인》은 그 여정을 음악이라는 언어로 담담하게 그려낸다.
느낀점
'비긴 어게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잔잔하지만 단단한 흐름을 유지하는 영화다. 극적인 전개나 감정 과잉 없이도 관객에게 긴 여운을 남기는 이 작품은, 진정성이라는 가치가 어떻게 사람을 변화시키는지 보여준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상처를 꼭 누군가가 치유해줘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를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가 바뀔 때 비로소 회복이 시작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레타는 데이브의 배신에 무너지지 않고, 음악을 통해 자기 목소리를 되찾는다. 댄 역시 무기력했던 삶 속에서 음악과의 재회를 통해 자신을 일으켜 세운다. 이들은 서로를 통해 무엇인가를 완성한 것이 아니라, 함께하며 각자의 인생에 ‘다시 시작할 용기’를 채워 넣는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앨범 녹음이 한창일 때, 그레타와 댄이 각자의 이어폰을 나눠 끼고 도시를 거니는 장면이었다. 그 장면 속에는 음악을 매개로 한 인간관계의 이상적인 형식이 담겨 있었다. 이 영화는 사랑이나 성공을 중심에 두지 않는다. 대신 자존감, 선택, 삶의 태도라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말한다. 《비긴 어게인》은 삶의 균열 속에서도 다시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을, 그 자체로 우리에게 조용히 알려주는 영화다.